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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서 10명 볼 시간에, 왕진 1명…수가 어떻길래 선뜻 못 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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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왕진(방문진료) 시범사업이 2019년 12월 시작한 이래 3년째 접어들었지만 참여 의료기관이 손에 꼽을 정도로 미미하다. 27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왕진을 신청한 동네의원은 332곳이다. 전체 동네의원 3만3000여개의 1% 가량이다. 시범사업 시작 후 올 4월까지 실제 진료한 데는 142곳(43%)에 불과하다. 이 기간 4722명의 환자가 1만5474건(총 진료비 18억100만원)의 진료를 받았다.

총 3만3000여곳 중 332곳만 신청 #병원서 진료하면 하루 최소 90만원 #"왕진센터 설립, 수가 세분화" 지적

시범사업 이전에는 별도 수가가 없어 원내 진료와 다를 바 없었다. 서울 노원구 장현재 파티마의원 원장을 비롯한 일부 의사들이 그런 여건을 견디며 시범사업 이전에도 왕진을 시행했다. 장 원장은 10년 넘었다. 그는 “의사 입장에선 병원 밖의 진료에 두려움·어려움을 느낀다"며 “병원 문을 닫고 나간다는 게 보통 불편한 일이 아니다. 의료사고 부담도 작지 않다”고 말했다.

장현재 서울 파티마의원 원장이 지난 16일 재택진료를 하기 위해 서울 노원구에 위치한 엄모(87)씨의 집에 들어서고 있다. 이우림 기자

장현재 서울 파티마의원 원장이 지난 16일 재택진료를 하기 위해 서울 노원구에 위치한 엄모(87)씨의 집에 들어서고 있다. 이우림 기자

경기도 파주시 왕진의사 송대훈 연세송내과 원장도 “기본적으로 2인 이상이 나가야 하고, 진료 형태도 종전 방식(원내 진료)을 바꿔야 한다”며 “초기 개원한 곳에서는 하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현재 왕진료는 단순 처치와 욕창 관리, 혈당 검사 등 비용을 통틀어서 1회 12만4280원(환자부담 30%)이다. 병원에 앉아서 환자 받는 게 낫다는 불만이 나온다. 환자 1명 왕진에 최소 1시간 걸린다. 진료실에서 적어도 10명 이상 볼 수 있는 시간이다. 재진(再診) 환자만 본다고 해도 하루에 90만원(8시간*재진료 약 1만2000원) 이상 수익이 생긴다. 이것저것 따지면 왕진이 결코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왕진에 따른 기회비용(왕진 감으로써 다른 환자를 볼 기회 상실)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현재 원장은 “초진 환자를 놓치면 재진 등 환자가 여러 번 올 기회를 놓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송 원장은 “진료 형태를 아예 바꾸는 것이라 보상이 더 커져야 뛰어들 것”이라며 “적어도 진료실을 지키는 것보다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야 움직일 것”이라고 말한다.

김용범 대한노인의학회 회장은 “의료행위를 세분화하고 수가도 세분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보호자나 환자를 사전 면담하는 것부터 진료, 치료계획 수립까지 단계별 행위에 대해 수가를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지역사회에 왕진센터를 두고 요청이 들어오면 환자를 연계해주는 식의 공동 운영 시스템을 고려해볼 수 있다”며 “은퇴 의사를 진입시키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송대훈 파주 연세송내과 원장이 지난달 31일 경기 파주 탄현면에 위치한 장순택(74)씨의 집에서 방문진료를 하고 있다. 이우림 기자

송대훈 파주 연세송내과 원장이 지난달 31일 경기 파주 탄현면에 위치한 장순택(74)씨의 집에서 방문진료를 하고 있다. 이우림 기자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시간 날 때마다 왕진을 가는 게 아니라 계획적으로 왕진을 할 수 있게 진료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며 “거동이 불편한 노인의 주치의 사업 개념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 인구가 100만명이라면 전담기관을 1000개를 지정해서 기관당 1000명의 환자를 등록하고, 환자 1인당 진료비를 정액으로 주되 30~50%를 먼저 지급한 뒤 왕진 횟수에 따라 추가로 주는 방식을 고려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수가가 정말 낮은 건지,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 탓인지 따져봐야 한다”(정성훈 복지부 보험급여과장)는 입장이다. 왕진 시범사업은 올 연말까지 진행한다. 복지부는 하반기 중 평가해 사업을 확대할지, 본사업으로 전환할지 정할 계획이다. 지금처럼 실적이 미미할 경우 시범사업을 연장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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